미드웨이 해전 (1) – 해전의 새로운 주역 항공모함 ­

1942년 5월에 있었던 산호해 해전은 사상 최초의 항모 대 항모의 해상 전투였다. 수백년간 계속되어 온 전함 간의 함포에 의한 해전이 막을 내리고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리고 산호해 해전 한달 후 양측은 가장 많은 수의 항공모함을 투입하여 전쟁의 흐름을 바꾸는 전투를 치루는데 이 전투가 미드웨이 해전이다.그래서 이 해전을 살펴보기 전에 우선 전투를 전후한 시점의 양측 항모 전력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일본 해군​진주만 공격 당시 일본 연합 함대는 총 6척의 항모를 1 항공 함대 예하 3개 전대(1/2/5 항공 전대)에 각 2척씩 편제하여 작전에 투입했다. 전쟁이 시작된 후 일본의 항모들은 매우 바쁘게 움직여 남방 작전을 지원하고 멀리 인도양까지 진출해 영국 해군을 격파하는데도 투입되었다. 그러던 중 산호해 해전을 치루면서 경항모 IJN Shoho(3개 항공 전대에 소속되지 않음)가 침몰하고 신형 항공 모함 IJN Shokaku가 대파, 동급의 IJN Zuikaku가 탑재 항공기의 절반 가량을 잃는 손실을 입고 전력에서 물러나게 되었다.때문에 미드웨이 작전에는 1/2 항공 전대의 항모 4척 – IJN Akagi, IJN Kaga, IJN Soryu, IJN Hiryu – 만이 참가하게 된다. 경항모 2척이 더 있었지만 이들은 별도 편제되어 상륙 부대 지원 등의 임무에 할당되었기 때문에 실제 미해군과 함대 결전을 벌일 수 있는 전력이 아니었다.​항모 IJN Aka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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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모 IJN Kaga​카가 역시 아카기와 비숫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당초 Tosa급 전함으로 진수 되었으나 워싱턴 협정에 따라 항모로 변경 되었다. 관동 대지진으로 순양전함 아마기를 항모로 개조하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대신 선택된 것이 카가이다. 1929년 11월 처음 취역했을 당시에는 아카기와 동일한 형태의 3단 비행 갑판을 가지고 있었다. 1931년 1 항공 전대에 예속되어 중일 전쟁에 참가하여 일본 육군을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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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해군은 카가가 아카기보다 성능이 뒤진다고 판단 1933년 Sasebo의 해군 정비창에서 개조 공사를 시작한다. 이 개조를 통해 카가는 아카기처럼 길이가 늘어난 단일 비행 갑판을 갖게 되었고 하부 비행 갑판이 격납고로 개조되면서 총 90대의 항공기를 탑재할 수 있게 되었다. 유류를 사용하는 보일러로 완전히 교체하고 항력을 줄이기 위해 함미 선체를 10.3m 가량 연장했다. 또한 함중앙부에 새로운 어뢰 방어용 Bulge 구조를 추가했다. 이런 일련의 개조때문에 카가는 표준 배수량이 38,800톤까지 증가했고 최고 속도는 아카기보다 조금 느린 28.3노트가 되었다. 연돌 역시 아카기와 유사한 형태로 재정비 되었다.함자체 화력에도 변화가 있었는데 중갑판에 있던 포탑 2개를 철거하고 200mm/50구경 3식 1형 함포 4문을 설치했으며 대구경 대공포인 120mm 대공포도 127m/40구경 89식 2연장포 8문으로 교체 되었다. 그리고 11기의 96식 25mm 대공포대도 추가로 설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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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류의 자매함이라고 할 수 있는 히류는 1936년부터 건조를 시작 1939년에 취역했다. 대분의 제원이나 성능은 소류와 동일하거나 비슷한데 주요 부분의 장갑이 약간 보강 되었다. 탑재 가능한 항공기 숫자도 거의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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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미드웨이 해전이 벌어졌을 때 일본 항모는 아카기가 55대, 카가가 63대, 히류가 54대 그리고 소류가 56대 총 228대의 항공기를 탑재하고 있었다. 미국 항모 3척은 요크타운이 75대, 엔터프라이즈가 79대 그리고 호넷이 80대 총 234대의 항공기를 탑재 했다. 항모 척수만 보면 미국의 전력이 열세처럼 보이지만 항공기 숫자는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래서 5 항공 전대 즈이카쿠의 부재가 더 커 보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이상으로 미드웨이 해전의 주역인 양측의 항모 부대에 대해 정리해 보았다. 다음 포스팅부터는 전투 전개 과정을 추적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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